HOME >ITEM > DETAIL
Share   Facebook Share Twitter Share
BLU-RAY
[Blu-Ray]울지마 톤즈 극장판 [고급양장본 56P커피북] (Don't Cry For Me Sudan LE (2disc))

소 비 자 가 :33,000 원

판 매 가 : 29,500 원

할 인 금 액 : 3,500( 10.606 % ▼ )

재입고 요청하기  
Send Add to Wishlist



상품고시

  • 제작사 또는 공급자 : KBS Media
  • 이용조건, 이용기간 : all 이상 이용가,미디어 재생가능한 플레이어 보유시/제품 훼손전까지
  • 상품 제공 방식 : 출시사에서 제작한 방식의 미디어
  • 최소 시스템 사양, 필수 소프트웨어 : DVD/Blu-Ray/CD 등 구동가능한 플레이어
  • 청약철회 또는 계약의 해제,해지에 따른 효과 : 제품 미개봉에 따른 제품만 반품 가능, 개봉시 전자상거래법으로 인한 반품 불가(복제 가능성)
  • 소비자 상담 관련 전화번호 : 티미디어 (02-706-8383)

PRODUCT DESCRIPTION

Special Feature

* 차세대 미디어 블루레이 타이틀입니다. 기존 DVD-Player에서는 재생이 되지 않으니 구입에 참고하십시오.

- 울지마, 톤즈 LA CGV 상영
- 30만기념 오찬영상
- 영등위 시상식 (2010 올해의 좋은 영상물 시상식)


Additional information

- 초회 한정판 Blu-ray 출시 고급 양장본 커피북(56p)
- 수단의 슈바이처, 쫄리 신부님... 당신은 사랑입니다.
- 故 이태석 신부의 감동 휴먼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
- 교육감이 선정한 학생들이 꼭 봐야 할 필수 영화! (판매 수익금 일부는 기부금으로 사용됩니다)
-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 25,40)
아프리카 오지 수단에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한 한국의 슈바이처, 故 이태석 신부가 남긴 마지막 선물…
위대한 사랑의 감동 휴먼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

2010년 2월, 아프리카 수단 남쪽의 작은 마을 톤즈. 남 수단의 자랑인 톤즈 브라스 밴드가 마을을 행진했다. 선두에선 소년들은 한 남자의 사진을 들고 있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 속 한 남자… 마을 사람들은 톤즈의 아버지였던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딩카족이다. 남과 북으로 나뉜 수단의 오랜 내전 속에서 그들의 삶은 분노와 증오 그리고 가난과 질병으로 얼룩졌다. 목숨을 걸고 가족과 소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딩카족. 강인함과 용맹함의 상징인 종족 딩카족에게 눈물은 가장 큰 수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을 보이지 않던 그들이 울고 말았다. 모든 것이 메마른 땅 톤즈에서 눈물의 배웅을 받으며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난 사람, 마흔 여덟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한 故 이태석 신부다. 톤즈의 아버지이자, 의사였고, 선생님, 지휘자, 건축가였던 쫄리 신부님, 이태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온몸 다해 그들을 사랑했던 헌신적인 그의 삶이 스크린에서 펼쳐진다.

꽃처럼 아름답고 향기로운 그의 인생이 이제 온 세상을 울린다!

■ About Movie

남부 수단의 절망의 황무지, 톤즈를 아시나요?
아프리카 오지 톤즈의 희망 故 이태석 신부를 만나다!

잠들지 않는 톤즈의 병원, 그 곳의 유일한 의사 이태석 신부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린 그의 투혼이 살려낸 소중한 생명들!

사랑을 가르치는 거룩한 돈보스코 초. 중 고등학교,
내 집처럼 느껴지는 정이 넘치는 학교를 꿈꾸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
한센인의 아픔을 함께 하다!

총 대신 악기를 든 아이들
브라스 밴드가 만들어낸 희망의 기적!

■ Director’s note

울지마 톤즈가 만들어 지기까지,
이태석 신부가 남긴 사랑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
올해 1월 우연히 이태석 신부의 선종 소식을 접하고 의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신부의 길을 택한 그의 삶에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하는 아프리카 톤즈를 찾아간 이유 또한 궁금했다. <울지마 톤즈>는 그러한 궁금증에서 시작되었다. 마흔 여섯의 길지 않은 이태석 신부의 삶을 알아가는 여정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태석 신부의 어머니는 신부님의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 어렵게 키운 아들이 의대에 진학했을 때의 기쁨과 사제가 되어 아프리카로 떠나겠다고 했을 때 겪었던 갈등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이미 이태석 신부의 누나와 형을 하느님의 사람으로 보낸 어머니는 의지했던 아들의 선택을 쉽사리 지지해 줄 수 없었다. 어머니는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며 먼저 떠나보낸 아들 이야기에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그 후, 만나게 된 이태석 신부의 지인들 또한 그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국내 취재를 끝낸 순간 모두 이태석 신부에게 깊게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톤즈가 너무나 궁금했다. 하지만 부족간의 전쟁이 시작된 남부 수단의 치안 상황으로 인해 바로 떠날 수 없었다. 우선 수단 어린이 장학회를 통해 건네 받은 40여개의 6mm 테잎을 전달 받아 현지에서 촬영할 내용들을 꼼꼼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깊은 슬픔에 빠진 톤즈와의 만남
수단에 도착해서는 아강그리아에서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던 한만준, 이승준 신부의 도움을 받았다. 두 분 모두 이태석 신부의 영향으로 아프리카까지 오게 되었다고 했다. 든든한 지원군을 만나 취재에 대한 걱정을 잠시 접은 찰나, 톤즈로 가는 길목에서 총격전이 시작되어 길목이 차단되었다. 결국 수단 남쪽으로 돌아가는 항공편을 이용해 비행기를 2번이나 갈아타고 비포장도로를 4시간 가량 달려 겨우 톤즈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기도 없고, 공동 펌프가 만들어내는 식수를 사용하는 톤즈의 사정은 굉장히 열악해 보였으나 그래도 지금은 많이 발전한 것이라고 했다. 신부님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돈보스코에는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신부님이 없는 병원을 여전히 찾고 있는 사람들 중 한 사람에게 의사도 없는 병원을 왜 찾는지 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출산을 도와 직접 아이를 받아준 신부님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며 몇 시간 동안 그 곳을 떠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이태석 신부가 없는 2010년의 톤즈는 온통 깊은 슬픔과 그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 Beautiful people

사랑이라 불리운 사람, 이태석 신부를 기억하다.
이태석 신부는 196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는 자갈치 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 갔고, 그는 집안일을 도우며 어머니를 기다리는 착한 아들이었다. 집 근처의 성당은 어린 그에게는 좋은 놀이터였다. 그에게 사제의 꿈을 가지게 한 ‘다미안 신부’의 영화를 본 곳도 성당이었다. 또한 성당에서 그는 또 다른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 풍금을 독학으로 배웠고, 작곡도 했다. 중 3때는 이미 성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음악과 신앙에 대한 믿음은 가난한 환경의 어려움 속에서도 그가 반듯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성실한 학생으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의대에 합격했다. 군의관 시절, 그는 가난한 사람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기로 다짐하게 되고, 이미 형제 중 한 명이 사제, 또 한 명은 수녀가 된 상황에서 자신 또한 사제가 되겠노라 어머니에게 어렵게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어머니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그의 굳건한 마음을 저버릴 수 없어 허락하게 되고, 그는 로마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살레시오회 수도 사제이자 의사로서 아프리카로 향하게 되었다. 그 후 그의 인생은 온통 톤즈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된다. 마흔 여덟의 불꽃 같았던 삶은 2010년 1월14일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하느님의 곁으로 돌아가며 끝을 맺게 되었다.

“처음에는 워낙 가난하니까 여러가지 계획을 많이 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같이 있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그들을 저버리지 않고 함께 있어주고 싶었다.’’ - 이태석 신부 인터뷰 中

■ Director

<추적60분> 구수환
세계 분쟁지역의 비극을 정직하게 기록해온 저널리스트,
현장을 발로 뛰며 옳지 못함을 고발해온 프로듀서!

“신부님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눈물로 기억하고 있었다.
톤즈의 아이들을 인터뷰 하면서 처음으로 함께 울었다.
내가 꿈꾸던 세상을 이태석 신부님이 보여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