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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탈리아의 화가 모딜리아니(1884~1920)의 전기영화.
* 감독 : 모딜리아니
주요작품
《여인의 두상 Head of a Woman》(1911), 《붉은 누드 Red Nude》(1917), 《잔 에뷔테른의 초상 Portrait of Jeanne Hébuterne》(1918), 《앉아있는 누드 Seated Nude》(1918), 《아기를 안고 있는 집시 여인 Gypsy Woman with Baby》(1919)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는 1884년 이탈리아 북부의 리보르노에서 유대계 가문의 네 자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898년 이탈리아의 풍경화가 굴리엘모 미켈리(Guglielmo Micheli)의 문하에서 미술 공부를 시작했으나 늑막염이 폐결핵으로 진행되어 공부를 중단했다. 이후 1902년 피렌체의 미술아카데미에서 조반니 파토리(Giovanni Fattori)에게 회화를 배웠다. 당시 피렌체에는 상징주의 미학이 유행했고, 모딜리아니는 이에 많은 자극을 받았다. 이듬해에는 베네치아로 가서 1905년까지 학업을 계속했다.
1906년 파리로 이주한 모딜리아니는 몽마르트르에 정착했다. 그는 콜라로시 아카데미에서 인체소묘와 유화를 공부하는 한편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지노 세베리니(Gino Severini), 앙리 툴루즈-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 폴 세잔(Paul Cé;zanne) 등에 영향을 받았다. 1909년 모딜리아니는 몽파르나스로 이사하여 조각가 콘스탄틴 브랑쿠시(Constantin Brâncuşi)와 교류하며 조각에 매료되어 1914년까지 30여 점에 이르는 특유의 길쭉한 석조 두상을 제작했다. 그러나 작업 중에 발생하는 먼지로 인해 이미 결핵으로 약화된 폐가 더 손상되자 조각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모딜리아니는 1915년 시인 겸 화상인 레오폴드 즈보로프스키(Leopold Zborowski)의 권유를 받아들여 회화로 복귀했다. 그는 전통적인 회화 기법을 뛰어넘어 인간의 본질을 조망하는 순수한 형상을 그리는 데 몰두했다. 탁월한 데생력을 반영하는 리드미컬하고 힘찬 선의 구성, 미묘한 색조와 중후한 마티에르를 특징으로 하는 그의 작품은 초상화와 누드화가 주를 이루었으며, 특히 긴 목을 가진 단순화된 여성상은 무한한 애수와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전달했다. 모딜리아니는 본래부터 아방가르드 운동에 초연한 입장을 보인 고립을 자초한 화단의 거물로 그의 작품은 향후 어떤 화파의 발생으로도 이어지지 않는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직관적인 작품 세계를 발전시켜 나갔다.
1917년 모딜리아니는 잔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를 만나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들었다. 잔은 로마 가톨릭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젊은 미술학도였지만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헌신적인 사랑으로 모딜리아니의 불안한 자의식을 공유했다. 모딜리아니의 작품은 동료 미술가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미술 시장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늘 변두리에 있었다. 같은 해 12월 모딜리아니는 베르트 베이유 화랑에서 최초의 개인전을 열었다. 그러나 통행인의 눈길을 끌기 위해 내 건 두 장의 누드화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바로 철거되고 전시회도 일찍 문을 닫고 말았다. 모딜리아니와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던 잔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견뎌야 했다.
1918년 모딜리아니는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열정과 헌신만은 더욱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이 시기의 작품은 잔의 초상이 주를 이루는데 단순미가 더욱 강조되는 가운데 전에 없던 서정미를 엿볼 수 있다. 모딜리아니는 잠시 남프랑스 니스에서 요양하면서 병세가 호전되었으며, 이곳에서 딸 잔 모딜리아니(Jeanne Modigliani)가 태어났다. 모딜리아니는 1919년 5월 파리로 돌아와 다시 예술적으로 고립된 생활을 했다. 그는 1920년 1월 24일 결핵성 뇌막염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나이 36세였다. 그의 연인이며 아내였던 잔은 그 이튿날 자살로 생을 마감했으며, 그녀의 뱃속에는 8개월 된 아기가 있었다.
* 배우 : 앤디 가르시아
5세때 일가가 모두 마이애미로 이주, 플로리다 국제 대학에 입학한 후 연기를 공부하고 지방 극단에서 수년간 연극배우로 무대에 선다. 70년대 후반에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한 후 TV 시리즈 <힐 스트리트 부르스>와 미니시리즈 <지상에서 영원으로>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한편 즉흥 연극 극단, 코미디 스토어, 라이브 하우스 등에도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영화는 85년 < The Mean Season>으로 데뷔. 86년 <800만가지 죽는 법>의 악역으로 주목 받고 <언터쳐블>에서, <블랙레인>, <유혹은 밤 그림자처럼>에서 경찰역으로 호평을 받았다. 로버트 드니로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대부 3>에서 주연으로 기용되어 점차 아메리카 영화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환생>, <리틀 빅 히어로> 등 성공작에 출연.
제41회 카를로비바리 국제 영화제 세계영화공헌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