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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DVD]아메리칸 앨리 (1disc) (American Alley (1dis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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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고시

  • 제작사 또는 공급자 : Cinema Do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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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품 제공 방식 : 출시사에서 제작한 방식의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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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비자 상담 관련 전화번호 : 티미디어 (02-706-8383)

PRODUCT DESCRIPTION

Special Feature

. 감독 코멘터리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감독 인터뷰 영상

Additional information

작품해설
김동령 감독의 <아메리칸 앨리>는 ‘동두천’으로 대표되는 한국의 기지촌과 그 곳에 남아있는, 혹은 거쳐간 여성들의 이야기다. 한국과 러시아, 필리핀 등 국적과 생김새, 나이는 모두 다르지만 놀랍도록 같은 삶을 살아가는 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는 국경과 세대를 넘어 역사 속에서 반복되는 ‘여성들의 삶’을 사유하게 한다. 특히 ‘기지촌 여성’이라는 선입견을 한 꺼풀 걷어내고 개개인의 욕망과 삶에 집중하는 감독의 섬세한 카메라는 이 작품을 ‘의미있는 기록물’을 넘어 ‘영화’로서의 작품성 또한 훌륭히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지난 2008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메세나상 특별언급, 2008년 서울독립영화제서 상영되었고, 2009 야마가타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서는 다큐멘터리부문 대상에 준하는 오가와 신스케상을 수상하며 국내외로 그 작품성을 입증 받은바있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한 편의 짦은 우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수록!
본 DVD에는 <아메리칸 앨리>의 편집이 2년 넘게 끝나지 않자 감독 스스로 중간 정리를 해보고자 만든 실험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기지촌이라는 공간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여성들의 삶을 사진과 영상을 가지고 압축적으로 표현해 낸 아름답고, 슬픈 이 우화는 짧지만, 그래서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길 것이다. 또한, 김동령 감독의 짤막한 코멘터리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줄거리
기지촌은 여전히 현재진행중이다. ‘아메리칸 앨리’는 기지촌의 새로운 이름으로, 이곳에는 더 이상 ‘달러벌이의 역군’이라 불리던 양공주는 없다. 다만 나이든 할머니들과 필리핀, 러시아에서 온 ‘엔터테이너’들이 살고 있을 뿐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아메리칸 앨리에서 미군은 언제나 왔다가 떠나는 존재였다. 따라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강해져야만 한다. 어떤 여성들은 결혼을 선택하고 또 출산을 하기도 하며, 이혼을 경험하고, 추방당하기도 한다. 짧은 시간 안에 경험하게 되는 이 놀라운 사건들은 여성들이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잠을 자고, 끝없이 버스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속에서 전개된다.


◎ 리뷰

'아메리칸 앨리', 떠나야 할 곳, 그러나 떠나지 못하는 여인들을 위하여/ 남다은 (영화평론가)
한 때 그곳은 ‘리틀 시카고’였다. 아마도 밤마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번쩍였을 그 곳은, 가난에 떠밀려온 한국 여인들의 마지막 피난처였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녀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걸까. 폐허처럼 을씨년스럽게 변해버린 그 텅 빈자리는 이제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등지로부터 가난에 떠밀려온 이주 여인들의 터전이 되었다. 그리고 ‘리틀 시카고’는 ‘아메리칸 앨리’가 되었다. 김동령 감독의 카메라가 향한 곳은 바로 그 기지촌 골목의 구석구석, 마치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그 곳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는 여인들의 삶이다. 율리아, 마리아, 나스챠, 레베카, 에덜린 라모스, 리디아, 그리고 K. 이들은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그 곳에 흘러오거나 남겨졌을 테지만, 영화는 이들의 과거를 캐묻지 않고, 바로 지금, 이들이 꾸려가는 일상을 따라간다.
한국에서 세 번째 낙태수술을 받는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거나, 끊임없이 요리를 해서 먹고 마시는 여인의 부산한 움직임을 주시하거나, 클럽에서 미군들과 어울리는 여인들의 몽롱한 활기가 화면에 담긴다. 몇몇 장면에서 여인들은 카메라를 쳐다보며 자신의 요동치는 내면을 고백하지만, 영화가 이들의 삶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시선을 첨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성매매를 피해 미군 클럽을 탈출하고 공장에 들어갔다가 성폭행을 피해 아메리칸 앨리로 돌아온 여인의 사연이나,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아이를 빼앗긴 여인의 사연, 혹은 폐교에서 미군들과 술을 마시다 추락사한 어느 여인의 마지막 등은 그저 무심한 자막으로 전해질 뿐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그 어떤 신파도 경계한다. 동정이나 연민어린 접근도, 사회구조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거부한다. 다만, 모두가 떠나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그 곳에 지금도 누군가가 살고 있다는 것, 거기에 여전히 삶이 있다는 사실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것 같다.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과 카메라가 소통하는 언어는 서툰 영어지만, 이들 사이의 대화는 거의 대부분 이들의 모국어로 이루어졌고, 영화가 그 모습을 찍을 뿐 자막으로 번역하거나 이들에게 그 내용을 묻지 않는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거기에는 카메라가 개입할 수 없고 다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녀들만의 삶이 있고, 영화는 그걸 존중한다.
그래서일까. 여인들 개개인의 구체적인 말보다 인상적인 건, 이들을 둘러싼 삶의 구체적인 풍경들이다. 다 쓰러져가는 공간 안에 흩어진 삶의 도구들, 이를테면 초라한 빨래들, 낡은 냄비, 소주가 담긴 술병, 벽에 걸린 시계, 싱싱한 야채들, 되찾을 수 없는 꿈처럼 한쪽 구석에 놓인 곰 인형들, 바닥에 널브러진 약봉지, 그리고 지나간 영화가 반복해서 나오는 오래된 텔레비전과 추억의 가요가 흐르는 오래된 라디오..... 이 사물들에 여인들이 말한 적 없고, 말로는 설명될 수 없는 깊은 회환과 슬픔이 깃들어있다. 그런 풍경들은 놀랍게도 종종 시적인 정취로 다가오는데, 영화가 이들의 삶을 의도적으로 미학화 했다기보다는, 이 유령 같은 도시, 착취와 폭력에 얼룩진 여인들의 삶을 그 순간만큼은 어떤 잣대로도 재단하지 않으려는 마음의 반영처럼 보인다. 여인들 각각의 떨쳐낼 수 없는 인간적인 외로움이 이들이 당면한 삶의 피폐한 조건보다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늘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함께 하려고 하지만, 늘 누군가의 떠나버린 자리를 응시해야 하는 여인들, 결국에는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노인이 되어 홀로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운명.
영화의 유일한 한국인이자 최고령인 K가 등장할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든다. 동두천에서 살아온 지 40년이 되었지만, 그녀의 구체적인 삶을 아는 자는 아무도 없다. 눈가에 번진 마스카라, 약을 털어 넣는 떨리는 손, 그 주름진 손가락을 서럽게 만드는 매니큐어, 초점 잃은 눈동자, 인간의 온기라고는 느낄 수 없는 작은 방 등만이 그녀의 현재를 설명해줄 따름이다. 다른 부분에서는 절제하던 카메라도 유독 그녀를 찍을 때만은, 아니, 공허하고 초라한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만은 감정적인 흔들림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영화에서 가장 서늘한 장면 중 하나는 카메라가 동두천의 골목을 떠나 갑자기 어느 언덕에 방치된, 버려진 듯한 무덤들을 찍는 순간인데, 잡초로 우거진 무덤들 앞에는 이름이 아닌 번호가 새겨져 있다. 아마도 K처럼 죽어간 수많은 여인들, 분명 그 곳에 존재했으나 죽어서도 기억되지 못하는 자들의 슬픔이 이 장면을 유령처럼 떠돈다. 영화는 그런 식으로라도 여인들의 망각된 죽음을 환기하고, 지금 살아있는 여인들의 미래를 아파한다.
하지만 두려운 건 이 모든 슬픔이 비단 아메리칸 앨리에 국한된 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전지구적 자본주의는 이 가난한 여인들에게 전지구적인 착취의 굴레를 안기고 이들의 삶이 뿌리를 내릴 장소를 허락하지 않는다. 이들이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미군과 결혼한다고 해서, 미군과의 사이에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그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영화도, 영화 속 여인들도, 우리도 모르지 않는다. 아메리칸 앨리의 어스름한 거리 풍경에서 시작한 영화는 비행기에서 하얀 구름을 내려다보며 끝나는데, 그 때, 그토록 외로워하던 여인이 미군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리는 자막이 뜬다.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그곳에서 삶이 지속되고 있음에 위안을 받아야 할까, 혹은 그곳을 벗어나는 길은 죽음밖에 없다고 무기력하게 체념해야 할까. 이 영화는 냉정하고 외롭다. 그러나 이 세상은 더 잔혹하고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