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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DVD]피오릴레 (1disc)(Fiorile (1di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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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매 가 : 13,900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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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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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DESCRIPTION

Special Feature

Additional information

사랑과 복수, 탐욕으로 얼룩진 베네데티 가문의 역사
로맨틱하면서도 격정적인 세 커플의 비극적 러브스토리!

시모나와 에밀리오는 한번도 본적없는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길에 우연히 그들을 베네데티(축복받은 자들)가 아니라 말레데티(저주받은 자들)라고 수근 거리는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된다. 호기심이 발동한 아이들은 아빠에게 그 이유를 묻고, 머뭇거리던 아빠는 황금에 얽힌 베네데티 가문의 전설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눈부신 토스카나의 자연풍경이 펼쳐지는 차창 밖으로 아이들은 200 년 전 조상과 만나게 되고, 시간은 최면에 걸린 듯 천천히 과거로 빨려 들어간다.

"황금에 눈 먼 오빠가 누이를 불행에 빠뜨리다"

1797년 비극의 시작 : 엘리자베타와 쟝의 사랑
나폴레옹의 군대에서 금화상자를 운반하는 중요임무를 맡고 있던 프랑스 군인 쟝은 이탈리아 토스카나 농부의 딸, 엘리자베타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사이, 엘리자베타의 오빠는 금화상자를 훔쳐 달아나고 금화를 몽땅 잃은 쟝은 결국 총살당하게 된다. 엘리자베타는 쟝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이 오빠라는 사실도 모른 채 복수를 맹세하는데... 그녀가 쟝의 아이를 낳다 세상을 떠나면서, 복수는 100년 뒤 후손에게로 넘어간다.

"사랑을 떠나보낸 오빠에게 독버섯을 먹이다"

1903년 죽음을 부른 복수 : 엘리사와 엘리오의 사랑
훔친 황금으로 부유해진 베네데티 가문의 장남 알렉산드로는 여동생 엘리사가 가난한 농부 엘리오와 사랑에 빠진 것을 알고는 그를 멀리 보내기로 한다. 몰래 돈까지 건네받은 엘리오의 가족들은 남겠다는 그를 억지로 데리고 떠나가고, 사정을 모르는 엘리사는 뱃속의 아이와 자신을 버린 연인에 대한 증오심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우연히 이 모든 것이 오빠의 음모였음을 알게 된 엘리사, 그 순간 100년 전 엘리자베타가 다짐했던 복수의 맹세가 그녀를 사로잡고, 오빠에게 독버섯을 먹게 한다.

"모두가 죽어갈 때, 살아남아 슬픔을 견뎌야한다"

1944년 끝나지 않은 저주 : 마씨모와 치아라의 사랑
엘리사의 손자, 마음여린 마씨모는 어려서부터 가문의 저주받은 전설 때문에 아이들의 놀림감이 되고 운명을 두려워하며 자란다. 역사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어 운명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보려는 마씨모에게 연인 치아라는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고 파시스트 세력이 기승을 부리자 함께 레지스탕스 활동에 뛰어들기도 한다. 어느 날 치아라가 잡혀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닥치고, 마씨모도 체포되어 총살될 위기를 맞는데... 세력가인 베네데티 출신이라는 이유로 혼자 목숨을 구한 마씨모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방황하기 시작한다.



◈ 감 독 : 파올로 타비아니 (Paolo Taviani) ,비토리오 타비아니 (Vittorio Taviani) ◈

- 비토리오 타비아니 (Vittorio Taviani) -
동생 파올로 따비아니와 함께 형제 감독이다. 형인 비토리오는 1929년, 동생 파올로는 1931년에 이탈리아신 미너이토에서 태어났다. 1950년께 피사의 시네클럽을 주도하면서 영화 경력을 시작한 따비아니 형제는 1954년 자바티니와 공동으로 나치즘에 관한 단편영화를 만들고 이후 많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1964년, 이들 형제의 첫번째 장편영화인 <전복자들>을 시작으로 3, 4년마다 한 편씩 꾸준하게 수작을 발표해 왔다. 톨스토이의 <신과 인간>을 각색한 <성인 미셸은 수탉을 가졌다>(1971), <알팡자팡>(1975), <카오스>(1984), <굿모닝 바빌로니아>(1987), <밤에도 태양이>(1990)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들은 당당한 자존심, 사회적 신분의 변화, 본원으로의 귀환이라는 일관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

- 파올로 타비아니 (Paolo Taviani) -
음악교육 따비아니 형제는 피사 지방의 산 마니아토에서 변호사인 아버지와 교사인 어머니 사이에 2년 터울을 두고 태어났다.(비토리오 1929년 9월 20일,파올로 1931년 11월 9일) 유복한 환경 덕분에 어려서부터 비토리오는 피아노, 파올로는 바이올린으로 음악 교육을 받았고 아버지는 형제를 데리고 자주 오페라를 보러 가곤했다. 어린 시절부터 익힌 음악에 대한 교양은 형제가 나중에 영화를 만들게 되었을 때 깊은 영향을 끼친다. 로셀리니, <전화의 저편> 형제가 영화와 첫만남을 가진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오후 수업을 빼먹고 극장에 몰래 들어갔던 그들은 그곳에서 우연히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전화의 저편 (Paisa(伊), Paisan(英))>(1946)이라는 영화를 보게 된다. 이 영화는 형제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그들의 운명을 바꿔놓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황홀할 정도로 아름답고 비극적이었다. 영화는 우리 스스로 당면한 현실을 이해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로 영화는 우리의 길이 되었다" 오르시니와의 협력 작업 형제는 피사대학에 진학, 비토리오는 법률을, 파올로는 미술을 전공한다. 1950년 형제는 '피사 영화 클럽'에서 발렌티노 오르시니(Valentino Orsini)를 만나게 된다.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따비아니 형제와 달리 오르시니는 노동자의 아들로, 격렬한 사회혁명주의자였다. 형제는 오르시니와 함께 1963년까지 긴 공동작업을 진행하게 된다. 오르시니 역시 로셀리니와 함께 형제의 진보적 정치관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첫 번째 다큐멘터리 피사를 떠나 로마로 옮긴 형제는 이제 영화에 전력투구하며, 교대로 조감독, 스크립트,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겸한다. 1956년, 형제는 그들의 첫 번째 다큐멘터리 <19944년 7월 산 미니아토 (San Miniato, Luglio 1944)>를 만든다. 이 영화는 형제가 유년시절 고향에서 경험한 독일군의 학살을 자세하게 담고 있다.(훗날 형제는 이 이야기를 다시 장편극영화로 만들게 된다. 이 영화가 바로 <로렌조의 밤>이다. 요리스 이벤스와 작업 1959년에는 요리스 이벤스와 함께 3부작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이탈리아는 가난하지 않다 (L'Italia non e un paese povero)>를 찍는다. 그러나 위대한 다큐멘터리 감독과의 작업을 통해서 오히려 형제는 다큐멘터리보다 극영화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첫 번째 극영화 1962년 따비아니 형제는 오리시니와 함께 첫 장편극영화 <불타는 남자>로 감독에 데뷔한다. 다큐멘터리 작업에서 장편 극영화 시대로의 본격적인 전환을 시도하는 따비아니 형제의 이 영화는 네오리얼리즘과 표현주의, 그리고 브레히트적인 요소를 과감하게 혼합한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로 이후 그들의 영화에 일관되게 등장하는 핵심적인 주제에 대한 선언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절정, 세계적 거장으로 1960년과 1970년을 거치면서 따비아니 형제 영화는 상업적인 성공과 평단의 지지를 동시에 얻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떠오른다. 특히 <빠드레 빠드로네>(1977)는 깐느영화제 최초로 황금종려상과 비평가상을 동시에 거머쥐는 쾌거를 이루며, 따비아니 형제를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가 인정하는 영화 거장으로 거듭나게 한다. 이후 <로렌조의 밤>으로 다시 깐느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고 할리우드로 진출, G.W. 그리피스에 대한 오마쥬인 <굿모닝 바빌론>을 제작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 각 본 . 감 독 ]

2012 시저 머스트 다이 (Cesare deve morire)
2007 종달새 농장 (La Casa de las alondras )
2001 부활 (TV) (Resurrezione)
1998 너의 웃음 (Tu ridi)
1996 친화력 (Le affinita' elettive)
1993 피오릴레 (Fiorile)
1990 밤에도 태양이 (Il Sole anche di notte)
1987 굿모닝 바빌론 (Good Morning, Babilonia)
1984 카오스 (Kaos)
1982 로렌조의 밤 (La Notte di San Lorenzo)
1979 초원 (Il Prato)
1977 파드레 파드로네 (Padre Padrone)
1973 알롱상팡 (Allonsanfan)
1972 성 미켈레의 수탉 (San Michele aveva un gallo)
1969 전갈자리 (Sotto il segno dello scorpione)
1967 전복자들 (I Sovversivi)
1963 결혼의 부조리 (I fuorilegge del matrimonio)
1962 불타는 남자 (Un uomo da bruciare)

◈ 배 우 : 클라우디오 비갈리 (Claudio Bigagli) ◈

2001 불공평한 경쟁 (Concorrenza Sleale)
2000 세일즈맨 (Il Commesso viaggiatore)
1993 피오릴레 (Fiorile)
1984 카오스 (Kaos)
1983 비앙카 (Bianca)
1982 로렌조의 밤 (La Notte di San Lorenzo)

◈ 배 우 : 마이클 바탄 (Michael Vartan) ◈

1968년 프랑스 출생. 프랑스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마이클 바탄은 1993년 파올로와 비토리오 타비아니가 감독한 〈Fiorile>으로 가장 유망한 배우에게 수여되는 프랑스 시저상 후보에 오르면서 영화계의 확실한 주목을 받았다. 이후 헐리우드로 진출한 마이클 바탄은 <사랑의 이름으로>, 〈The Curve>에서 주연을 맡아 열연했는데, 두 영화 모두 선댄스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25살의 키스>에서는 드류 베리모어가 사랑에 빠지는 교사 샘 콜슨 역으로 미소가 아름다운 배우라는 평을 받았다. 2002년 베스트 TV 연재드라마의 골든 글로브에 노미네이트 되었고, 시청자가 선호하는 TV 드라마 상(People’s Choice Award for Favorite Television New Dramatic Series)을 수상한 TV 시리즈 〈Alias>에 주연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2011 콜롬비아나 (Colombiana)
2010 조렌 (Jolene)
하이 스쿨 (High School)
2007 빅 샷츠 (TV) (Big Shots)
로그 (Rogue)
2005 퍼펙트 웨딩 (Monster-in-Law)
2002 스토커 (One hour photo)
2001 앨리어스 (TV) (Alias)
2000 넥스트 베스트 씽 (The Next Best Thing)
1999 25살의 키스 (Never Been Kissed)
1997 사랑의 이름으로 (The Myth Of Fingerprints)
터치 미 (Touch Me)
1996 졸업 (The Pallbearer)
1995 투 웡 푸 (To Wong Foo, Thanks For Everything! Julie Newmar)
1993 피오릴레 (Fior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