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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최고의 테크니션 제임스 카메론 감독과 디스커버리 채널이 함께하는 비스마르크호의 비밀...!
영화 <타이타닉>의 명감독 제임스 카메론과 디스커버리 채널이 함께한 심해 바다로의 탐험. 무적의 ‘비스마르크’호는 세계 2차 대전 당시 가장 무시무시하고 악명 높았던 전투함으로, 60년 이상 북해의 바닥 아래 남겨져 있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안내에 따라, 거대한 역사를 품은 채 수장되어버린 비스마르크호의 비밀을 하나씩 벗겨 나가는 신비한 체험을 맛볼 수 있다.
비스마르크호의 제원
비스마르크호는 1936년 6월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1939년 2월에 진수되었다. 영국이 가장 두려워했던 독일 전함으로서 일본의 야마토급 전함이 나오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큰 전함이었다. (배수량 : 50995톤, 함장 : 251m, 함폭 : 36m, 함고 : 15m)
무장 : 38 cm 주포 8문, 15 cm 보조포 12문, 10.5 cm 보조포 16문, 3.7 cm 대공포 16문, 2 cm 대공포 18문
최고 항진 속도 : 30.12 knot
승무원 : 2400 명
함재기 : Arado Ar 196 4기 포함한 총 6대.
2차 대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이야기지만, 영국해군 전체와 싸웠던 독일 전함 비스마르크호는 제2차 세계 대전 중 짧은 기간 동안이었지만 극적인 활약을 했으며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전투를 했던 전함이다. 전통적인 해양 강국 영국에 비교해 볼 때, 당시 독일의 해상 전력이란 것은 한심한 수준이었다. 물론 함대에서 각 전함을 비교하자면 성능면에서 독일 전함이 월등하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뛰어난 성능의 전함일지라도 2차 대전 해전은 거함 거포를 우선으로 한 포격전의 양상이었고, 이 경우 질보다 양이 승패의 조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즉 독일해군은 질적으로 뛰어난 소수 정예였지만, 1차 대전 때부터 쓰던 전함까지 긁어 모은 영국해군의 물량 공세를 당해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개전 이래 독일 유보트(U-boat)들의 눈부신 활약이 대서양 심해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고 이것은 그나마 좁은 독일 해군의 입지를 유지시키는 자랑거리였다. 유보트들은 따로 떨어져 잠항하다가 영국 수송선단을 발견하면 무전으로 다른 지역의 유보트들을 한 곳에 집결시켜 공격하는 전술을 사용해 혁혁한 전과를 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시 육군과 공군에 밀려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던 독일 해군은 전력을 집중해 뭔가 눈부신 성과를 달성해내야만 했고, 비스마르크호는 그 목적아래 대서양 진출명령을 수행하고자 과감하고 극적인 작전을 수행하였다. 그리하여 영국함으로 즐비한 대서양에서 위험한 항해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영국은 대서양의 해군력을 총동원하여 비스마르크호의 출항을 저지하려 온 힘을 쏟아 부었다. 전함과 순양함 등 가용 가능한 전력을 집결시키고 철통 같은 레이다 망을 동원하여 비스마르크호의 항로를 추적했다. 최신의 설비와 확장된 주포 사거리의 거대함 비스마르크호는 영국군의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막연한 긴장감으로 비스마르크호의 존재를 대하고 있었다. 몇 번의 교전으로 영국군 거함 후드호의 격침과 순양함들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비스마르크호는 영국군을 더욱 긴장시켰고, 이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비스마르크호를 막기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대서양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당시 아군의 주둔지역 프랑스 해안에 도달해야만 했던 비스마르크호는 작전 완수를 단 하루거리에 앞두고 (브레스트항까지 800km 거리였다고 한다)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최후의 격전 지역이 된 프랑스 해안 근처에 다다른 비스마르크호는 몇 번의 영국 비행대 소드피쉬 뇌격기의 어뢰공격으로 조타장치가 고장 나서 만신창이가 되었고, 영국 주력함대와 순양함들은 무방비가 된 비스마르크호에 무차별 포격을 가했다. 역사가들은 400발에서 600발 정도가 명중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발포된 주포만도 3000발에 이른다. 그리고 이중 400~600발이 명중한 것이다.)
뤼첸스 사령관, 린데만 함장을 비롯한 2400명에 이르는 비스마르크 승무원 전원이 전사했으며, 생존자는 단 115명 정도였다고 한다. 1941년 5월 비스마르크의 침몰은 해전 사상 거함 거포주의의 종지부를 찍었다 할 수 있는 대사건이었다. 다른 전함에 비하여 강력한 장갑을 보유해서 "침몰하지 않는 전함"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비스마르크 호는 오랜 추적과 포격전 끝에 침몰하였다. 이는 이제 제공권이 받쳐주지 않는 한 덩치 큰 전함이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후 독일의 해군이 더욱 소극적인 행동을 보인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고, 이어 투입된 형제함 틸피츠 역시 그 형 비스마르크를 따라 비운의 최후를 맞게 된다.